#편집자택 #어느당일 #갑작스레 #약속이잡히는 #깊은빡침에대하여

편집자 택님이 일하는 팀은 에세이와 청소년 문학을 주로 담당하는데, 그중에서도 택님은 청소년 문학의 시리즈 기획과 편집을 홀로 도맡고 있습니다. 사실 인터뷰 질문지를 추리기 위해 그의 전체 공개 업무일지를 샅샅이(?) 뒤지기 전까지만 해도, 새 회사에 입사한 지 이제 막 3개월이 지난 택님의 업무 현황이 이렇게나 정신없이 휘몰아치고 있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청소년 문학은 작가님의 원고를 교정/교열만 진행한 뒤 출간하는 분야라고 오해를 한 나머지,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원고를 매만지며 조용히 보내고 있을 줄로 알았죠. 하지만 그의 업무일지에 적힌 하루 소감 중 가장 자주 등장하는 문장은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매일매일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일이 자꾸만 쌓이는 느낌이다.” “뭔가 단단히 잘못된 게 아닐까.” 그는 소리 없는 전쟁 속에서도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나가고 있었습니다.

편집자 택님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들은 이런 것들입니다. 반듯함, 도시락, 차분함, 성우 뺨치는 목소리 등등. 첫인상만으론 사람을 전부 파악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겉으로 보여지는 느낌이라는 것이 있을 텐데요, 택님의 첫인상은 ‘일 잘하는, 그리고 평소에는 상냥하고 순하지만, 단호하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줄 아는 똑 부러진 청년’ 이미지였습니다. 표현이 조금 아재스럽긴 한데, 편집자 택님은 같은 나이 때에 제가 갖지 못했던 것들을 이미 충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단정하게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것 같아서 내심 부럽기도 하고 참 멋져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인터뷰이 기근을 핑계 삼아 택님에게 불쑥 인터뷰 제안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반듯한 청년은 별로 친하지도 않은 동료 편집자의 청을 흔쾌히(?) 받아줬습니다(고마워요!). 출판계에 입문한 지 이제 만으로 딱 4년이 된 후배 편집자 택님에게 ‘몰아치는 업무 속에서도 우리가 칼퇴근을 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물었습니다. 스포일러를 하자면, 대답은 그리 유쾌하진 못합니다. 어쩌면 저보다 더 뛰어난 후배라면 자신만의 현명한 답을 찾아내 일상에 적용하고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역시나 저 혼자만의 생각이었네요(미안해요!).


ㅍㅈㅈ: 안녕하세요? 늘 도시락을 같이 먹다가 이렇게 각 잡고 질문을 드리니 민망합니다. 인터뷰를 수락해주셔서 감사드리고요, 간단히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편집자 택(이하 ‘택’): 안녕하세요? 4년째 청소년을 위한 도서를 만들고 있는 편집자 택입니다. 이전 직장에서 청소년문학/인문/과학을 비롯해 어린이학습까지 여러 분야를 담당했고요. 현 직장에서는 청소년문학 분야만 전담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우연찮게 청소년 분야로 단행본 출판계에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관심도 없었고 잘 모르는 채로 시작한 분야이지만 나름 재미와 보람을 느끼며 일하고 있습니다. 사실 작년 가을에 퇴사를 하면서 다음 직장에서는 청소년이 아닌 다른 분야를 맡고 싶었어요. 근데 어쩌다 보니 또다시 이 분야를 담당하고 있네요.

ㅍㅈㅈ: 서울에서 자취를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의 매일 빠짐없이 정갈한(?) 도시락을 싸오시는 것으로도 알고 있는데요. 서울에서 자취하는 남자 편집자로서, 하루의 일상 루틴이 궁금합니다.

택: 음, 저의 일상 루틴이라면 크게 세 가지를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먼저, 아침을 꼭 챙겨먹습니다. 영양을 위해 켈로그 스페셜K와 아몬드브리즈 언스위트를 먹죠. 영양강화제가 들어가서 시리얼이 은근히 이런저런 영양소가 많거든요. 지인 중 한 분이 그럴 거면 차라리 영양제를 먹으라고 하던데, 뭐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퇴근 후에는 꼭 운동을 가려고 노력합니다. 저의 평일 저녁은 철저히 운동에 맞추어져 있어요. 운동 갈 시간을 고려해서 일찍 퇴근하고, 집에 오자마자 저녁을 먹죠. 그래서 평일 저녁 약속을 꽤 싫어하는 편입니다. 특히 당일 갑작스럽게 약속을 잡는 건 최악에 가까운 일이죠. 그럼 운동을 매일 가느냐? 그렇진 않습니다. 체육관이 평일에만 운영되는데 주 3~4일 정도 가는 것 같아요. 저녁에 약속이 있을 때도 있고, 그냥 밥 먹고 누워 있다가 운동을 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제 의지대로 빠지는 건 괜찮은데 예상치 못한 일로 인해 운동을 가지 못하면 정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요즘이야 그럴 일이 없지만 예전 회사에서는 작가와의 미팅이 길어진다거나 하는 일이 왕왕 있었죠. 끝으로 도시락 식사가 있네요. 매일 회사와 집에서 먹는 도시락은 사실 귀찮음을 반영한 결과입니다. 끼니마다 뭘 먹을지 고민하는 게 은근 스트레스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적당한 반찬 몇 가지를 정하고 그걸 돌려가며 먹습니다. 나름 영양을 생각해서 밥, 고기반찬, 야채 이런 식으로 구성해서 먹어요. 밥과 야채는 직접 준비를 하고요. 고기반찬은 온라인으로 한 번에 잔뜩 주문해서 냉동을 하죠.

ㅍㅈㅈ: 운동을 하시는군요! 저도 그 소문(?)을 들었는데요, 무려 N년째 복싱을 배우셨다고요. 심지어 대회 경험까지 있는 걸로 아는데요. 편집자들 세계(?)에서는 흔치 않은 희귀 스포츠를 배우시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택: 학교 다닐 적에 우연히 복싱을 시작했습니다. 별다른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냥 복싱이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 지역에 아주 오래된 체육관(연기복싱체육관)이 있는데 거길 다닌다는 게 뭔가 재미있었습니다. 삐걱대는 나무 바닥에 여름엔 비가 뚝뚝 떨어지고 겨울엔 입김이 나오는, 뭔가 헝그리 정신이 잘 느껴지는 그런 곳이에요. 공간이 주는 매력 때문에 꾸준히 다닌 것 같네요. 취업 준비와 회사 생활에 적응하는 동안은 운동을 잠시 놓고 있다가 3년 전부터 다시 복싱을 시작했습니다. 지금 다니고 있는 체육관도 나름 공간적 매력이 넘쳐나는데요. 지하에 있어서 사시사철 뭔가 쿰쿰한 냄새를 잔뜩 머금고 있는 곳입니다. 편견이긴 하지만 복싱은 왠지 이런 낡고 해진 공간들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오랫동안 복싱을 해오고 있는 이유는 그냥 습관이 되어서입니다. 복싱이 엄청 재미있다거나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준다거나 그런 건 전혀 아니에요. 사둔 장비도 있고 결제한 회비도 있으니깐 돈이 아까워서 꾸역꾸역 체육관에 나간다랄까요. 아주 작은 마음이긴 하지만 복싱을 좀 더 잘하고 싶어서 계속 체육관을 다니고 있기도 합니다.

ㅍㅈㅈ: 무언가 한 가지를 꾸준히 오랫동안 해오시는 분들을 보면 정말 멋지고 부럽고 존경스러워요. 조금 1차원적인 질문이지만, 운동을 하시면서 삶이나 일에서 달라진 부분이 있으셨나요? 혹은 드라마틱하게 달라지지 않았더라도, 택님만이 느끼시는 운동을 하기 전과 후의 공기의 밀도 차이라든지...(ㅎㅎ) 아무튼 N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직장인의 신분으로 한 가지 운동을 꾸준히 해왔다는 것은, 그만큼 분명 얻거나 기대하는 것이 있었다는 뜻일 테니까요.

택: 건강과 의외성을 조금씩 얻은 것 같네요. 3년 전에 복싱을 다시 시작하게 된 계기가 몸이 아파서입니다. 직장인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편집자도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잖아요. 모니터만 바라봐도 거북목이니 뭐니 해서 몸이 축나는데, 교정을 본다고 종이로 빨려 들어갈 듯이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몸이 망가지지 않는 게 이상하지요. 사실 복싱이 자세 교정에 크게 도움이 되진 않아요.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보다는 훨씬 몸이 좋아졌어요. 복싱을 하면서 재미난 걸 하나 얻었는데 바로 의외성입니다. 사실 편집자와 복싱이 정말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잖아요. 저의 외적인 모습과 복싱도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요. 제가 복싱을 몇 년 했다고 말하면 다들 의외라는 듯 신기하게 보세요. 저는 사람들의 그런 반응이 재미있더라고요. 의외의 모습 때문에 저를 한 번 더 기억해주시는 분도 많고요. 그래서 어디를 가나 복싱한다는 이야기를 꼭 해요. 심지어 회사 면접 볼 때나 업무 차 작가님을 만날 때도 복싱 이야기를 하는 편이죠.

ㅍㅈㅈ: 어쩌면 저도 그런 ‘의외성’ 때문에 택님에게 더 관심이 갔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나저나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 ‘일이 자꾸 쌓인다’라고 걱정을 달고 일하시지만, 그래도 지난 3개월여의 흔적을 보니 정말 많은 예비 저자를 만나고 미팅을 진행하고 몇 건은 계약까지 성사시켰습니다. 저는 입사 후 1년이 지나서야 겨우 첫 국내 저자 계약을 진행했는데, 원래 이렇게 적극적으로 기획 업무를 하시는 편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