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식물상담소 #보통남자김철수 #12년차편집자

#식물에세이 #뇌과학교양서부터 #경제대공황을다루는 #400쪽짜리책까지 #분야를넘어 #애정을책으로만드는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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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B님은 원래 제가 가장 먼저 인터뷰를 하고 싶은 편집자였습니다. 회사에서 나온 책 중 가장 질투 나는 기획들은 모두 편집자 B님의 책이었거든요. 대체 어디에서 그런 아이템을 모으는지, 그리고 저자는 어떻게 섭외하는지, 기어코 대중성과 고유성을 겸비한 완성물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묻고 싶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걸 더 잘하고 싶어요,

그리고 저자가 저의 제안을 만났을 때 저만큼이나 가슴이 뛰면 좋겠습니다.”

ㅍㅈㅈ: 지금 다니는 회사에 벌써 햇수로 8년째 일하고 계시죠? 어떤 계기로 출판계에 입문하셨는지 궁금해요.

편집자 B: 출판사 일은 2011년에 시작했어요. 당시에 파주출판도시협동조합에서 인턴십 프로젝트를 진행했었어요. 출판단지 내에 있는 출판사에서 6개월 동안 인턴으로 일하며 한 권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경험하고 출간해볼 수 있도록 하고, 출판사에서 하는 일들도 배울 수 있는 과정이었어요. 이 사업에 신청한 출판사들에 파주출판도시협동조합에서 이력서를 모두 보내고 면접을 볼 사람을 뽑도록 했어요. 그중 동녘 출판사에서 제 이력서를 선정했고 면접을 봤어요. 면접 전날 울산에서 서울로 올라와서 서울역 근처에 있는 찜질방에서 면접 때 할 대답들을 정리한 걸 들여다보고 잔 듯 안 잔 듯 하룻밤을 지내고는 다음 날 아침 파주출판도시로 가는 2200번 버스를 탔던 게 잊히지 않네요.

그렇게 6개월 인턴십을 하고 한 권의 책을 사수와 함께 낼 수 있었어요. 6개월 동안 배웠을 뿐인데도 판권의 책임편집란에 사수와 함께 이름을 올려주셔서 감사했어요. 이후에 정규직으로 전환이 되었고 2년 정도 그곳에서 일했습니다. 당시 그 출판사에서 출판을 배울 수 있어 좋은 시작이었다고 생각해요. 같은 사업에 선정되어 다른 출판사에서 일하는 동기들은 편집자로 지원했지만, 다른 부서에서 일을 하거나 책 한 권 만드는 걸 경험하는 게 사업의 취지였는데도 다른 잡무를 시킨다거나 악용하는 사례들도 많았거든요. 다행히 저는 온전히 그 취지대로 출판을 경험할 수 있었고, 그렇게 편집자로서 일을 시작하고 배울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동녘 출판사가 제 첫 출판사였고, 두 번째 출판사에서도 2년 정도 일했고요, 지금 일하고 있는 세 번째 출판사에서 7년 넘게 일하고 있네요.

ㅍㅈㅈ: 편집자님을 보면 애정의 마음이 유독 깊고 넓다는 생각이 들곤 했어요. 그림 그리는 식물학자, 고양이를 키우는 성소수자… 한 편집자의 마음속에서 ‘아, 이 사람과 꼭 책을 내보고 싶다’라는 애정은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요?

편집자 B: 사람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요. 특히 자기만의 이야기. 자기만의 에너지를 가진 사람에게 끌립니다. 그런 분들이 글을 썼을 때도 특별함을 가진다고 생각해요. 저 사람은 뭘 하다가 저렇게 됐지? 뭐가 원동력이지? 저 사람 안에 무슨 이야기가 있지? 그런 게 저한테 큰 질문입니다. 겉으로는 모두 달라 보여도 사람 사는 건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그중에서도 어떤 특별함이 어떻게 저 사람에게서 발현되어 저런 에너지와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진 건지 궁금해요. 나도 배우고 싶고 알고 싶다는 데서 출발하는 것 같습니다. 편집자를 정의하는 여러 말 중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좋은 것을 골라내는 사람’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좋아하는 걸 더 잘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매출도 따라온다는 말을 믿고 싶어요. 그걸 잘하고 싶어서 계속 노력하는 중입니다. 지금까지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ㅍㅈㅈ: 편집자의 일 중에서 아무래도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은, 유튜브/잡지/책/TV 등등 임의의 매체에서 책이 될 것 같은 저자를 불쑥 발견했을 때가 아닐까 싶어요. 그것도 이미 세상에 알려진 인플루언서가 아니라, 오직 내 눈에만 보이는 가능성을 머금은 저자라면 심장의 두근거림은 더 빨라지는데요, 마치 세상에서 가장 먼저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기분이랄까요? 편집자님은 지금까지 다양한 기획을 시도해오시면서 이렇게 가슴을 뛰게 한 예비 저자가 있었나요?

편집자 B: 모든 예비 저자들은 가슴이 뛰는데요. 처음부터 뚜렷한 목적성을 갖고 조사를 하다 발견할 때보다, 무언가를 찾다 보니까 곁가지로 더 생각하게 되고 그러다가 우연히 또 다른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 때 ‘어, 이런 것도 있었는데 왜 생각 못 했지?’, ‘내가 찾던 건 이게 아니었는데 이런 이야기도 있었네? 이런 분도 있네?’라는 생각이 들 때 재미있어요. 본인의 분야에서 꾸준히 성과를 내시는 분을 어쩌다 발견하게 되고, 그 이야기를 어떻게 가치 있게 가공할지 생각하는 과정이 재미있어요. 그분에 관해서 자료를 찾아보고 제안 메일을 쓰는 동안 이미 제 머릿속에서는 이후의 과정들이 그려지기 시작하는 거죠. 아직 만나지도 않았는데 상상 속에서 이미 계약하고 책 내고 베스트셀러가 되고… (웃음) 그렇게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게 저 자신한테도 설득력으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 메일을 쓰고 있는 단계지만, 그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책으로 만드는 모든 상황을 머릿속에서 상상하고, 그 사람을 실제로 만나면 얼마나 즐거울까 생각하면 재미있어요. 제가 좀 몽상가 기질이 있거든요. 그래서 때론 제안했는데 거절 당하면 그 모든 상상이 한꺼번에 허물어져서 마음이 아파요. 내 마음속에서는 이미 저 사람이랑 책 내고 다 했는데! 일장춘몽(一場春夢)이 되는 거죠. 물론 섭섭한 마음을 애써 감춘 채 다음을 기약하면서 다시 연락을 드리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어쩔 수 없지요. 기획을 하고 저자를 만나고 하다 보면 나의 노력 이외에도 타이밍과 이심전심이 아주 큰 작용을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돼요. 그리고 무엇보다 저자가 저의 제안을 만났을 때 저만큼이나 가슴이 뛰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