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깊이 #대표라기보다는 #여전히기획편집자
#주40시간으로는 #완성할수없는일 #책만드는좌절감 #그럼에도시간이해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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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 멀리깊이 출판사 박지혜 대표님의 책을 만났습니다. 처음 책의 제목을 접했을 때는, 비출판인의 독립출판 경험담을 엮은 에세이인 줄 알았습니다. 당시 제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면 베스트셀러를 만들 수 있을까, 그리하여 개인 1년 매출 목표를 달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이 가득한 상태였고, 따라서 오만하게도 개인의 독립출판 따위에 관심을 둘 여력이 없었습니다. 책 제목은 그렇게 의식의 저편으로 희미해졌고 시간이 한참 흘러 우연한 기회로 이 책의 부제를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작은 출판사를 꾸리면서 거지 되지 않는 법.”

일을 하면서 제가 ‘거지’가 될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만, 가만 생각해보면, 갈수록 독서 인구가 줄어들고, 반대로 세상에 출간되는 책의 종수는 기하급수적을 늘고 있고, 한편으로는 (책보다 몇 배는 더 재미난) 수많은 영상 매체가 득실대는 시대에 ‘종이책 편집자’라는 직업만큼 거지 되기 쉬운 직업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거지 됨’을 면하기 위해 선배 편집자들이 택한 길이 자기만의 1인 출판사를 차리는 것이라니, 솔직히 이런 코미디가 또 어디에 있나 싶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전히, 디지털 세상에 존재하는 코드로밖에 존재하지 않는 무형의 콘텐츠들과는 다른, 손으로 쥐고 만질 수 있고, 또한 우리가 ‘책’이라는 말을 내뱉거나 들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직육면체의 작고 단단한 물체인 ‘종이책’을 만드는 비즈니스를 통해 앞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더 나아가 큰돈을 벌어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럴 자신도 조금은 있습니다. 짧은 경력이지만 지금의 회사에서 갈고닦은 책을 만들어 파는 기술을 통해 ‘종이책을 만들어 팔아, 혼자서도 이만큼 벌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남들이 내라는 책 말고 내가 내고 싶은 책을, 나를 신뢰하는 저자들과, 내가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대형 출판사들처럼 큰 매출을 내야 하는 것이 아니므로 기획과 편집을 게을리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안정적인 월급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다들 알고 있지 않나. 그러다 독자를 제대로 설득하는 책 한 권이 터지면, 그야말로 출판인생이 역전된다. 아마 많은 수가 이 출판인생 역전을 위해 작은 출판사를 시작한다. 그리고 대부분 ‘그지’가 된다. _ <날마다, 출판>, 12쪽

그러던 와중에 이 책을 만났고, 저보다 한참 먼저 비슷한 고민을 경유한 누군가가 자기만의 답안지를 작성해 제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순식간에 책을 다 읽고 인터뷰이가 출연한 어느 팟캐스트를 검색해 들뜬 마음으로 청취하였습니다. 나만의 답안지를 제출하기까지는 다행히 시간이 조금 남아 있지만, 아직 채운 것보다 채우지 못한 질문이 더 많은 상태에서, 묵묵히 새 길을 개척해나가는 업계 선배가 세상에 제출한 답안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 사람은 두렵지 않았을까?’ ‘저 사람은 얼마나 준비를 했을까? 그리고 그 준비는 세상에 맞섰을 때 유효했을까?’ ‘저 사람은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찾았을까?’ ‘저 사람은 지금 자신의 선택을 만족하고 있을까?’ ’저 사람 앞에 놓인 일은, 앞으로도 지속 가능할까?’

이런 마음을 품으며 인터뷰이께 질문을 던졌습니다. 다 적고 다시 읽어보니, 제대로 공부도 안 한 주제에 옆 사람의 답안지를 훔쳐 보려고 하는 제 초조한 마음이 덕지덕지 묻어 있는 것이 보여 민망합니다. 그럼에도 모든 질문에 성의를 다해 답을 적어주신 인터뷰이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어딘가에서 ‘지속 가능한 출판의 일’을 찾아 헤매고 있을 익명의 편집자가 계시다면, 앞으로 그려나갈 답안지에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멀리깊이 박지혜(이하 ‘멀리’): 안녕하세요. 출판사 멀리깊이를 창업한 박지혜라고 합니다. 다음 달이면 창립 2주년을 맞습니다.

멀리: 창업을 한 지금까지도 성공적인 경력을 쌓은 출판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그냥 직원이 많은 출판사에서 일했다 뿐이지, 제가 낸 성과가 그리 대단한가 돌아보면 그렇지도 않고요. 저의 책 『날마다, 출판』에 기술했듯이, 장사 잘되는 집에 고용되어서 물건 좀 팔아본 경험이 있는 것이 제 출판 이력의 전부입니다. 오히려 그랬기 때문에, 내 존재를 증명하려면 뛰쳐나와서 혼자 오롯이 해보는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100명 조직을 먹여 살리는 책과 내 몸뚱이 하나 건사하는 책의 사이즈란 것이 명확히 다르고, 내 몸뚱이만 건사해도 되는 책을 의미 있게 만들어보고 싶었다는 것이 창업할 당시의 바람이었어요. ‘대박이 아닌 의미 있는 책을 만들면서 업을 이어나갈 수는 없을까’에 대한 고민은 경력 10년 차(두 번째 회사에서 7년을 근무했을 무렵)에 하기 시작했고, 퇴사는 13년 차에 하게 되었습니다. 퇴사 직전 회사에 이런저런 문제가 발생했는데, 그때 간담회에서 당당하게 “이 회사는 10만 부를 1권 내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고 1만 부를 10권 만드는 데는 아무 관심이 없는 게 아니냐”면서 이의제기를 했거든요. 창업을 하고 나니 엄청나게 쓸데없는 문제제기였습니다. 10만 부 읽히는 책을 만들어내는 것도 엄청나게 가치 있는 일이니까요. 어렸다기보다는 멍청했네요.


1인 출판사의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