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을 쏟을 대상이 생기는 행복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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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은 필연적으로 질투를 부른다고 생각합니다. 편집자 P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완전한 우연이었습니다. 5년 전쯤, 회사 밖에서의 작은 일탈(?)을 꿈꾸던 시절 북에디터 홈페이지에 ‘독립출판 파트원 모집’ 글을 올렸습니다. ‘설마 진짜로 연락이 올까?’ 했는데 진짜로 연락이 왔습니다. 편집자 H님이었습니다. 마침 둘 다 파주출판단지 안에서 근무를 하고 있어서 지혜의숲 서재에서 첫 만남을 가졌습니다. 그 뒤 다른 팀원이 1명 더 합류했고 우리는 정말로 독립출판물을 만들었습니다.

편집자 P님과 독립출판을 핑계로 카톡을 주고받으며 일에 대한 고민과 신간 편집에 대한 고충을 종종 나눴고, 그러던 중 정말 우연히 같은 시기에 같은 회사에서 2년 남짓을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놀라운 우연입니다.) 그 기간 동안 편집자 P님은 세상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긍정으로 꾸준히 자신의 기획을 이어갔고, 혹자의 말을 인용하자면, “출판 역사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성과를 내기도 했습니다. 바로 옆 팀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저는, 입사한 지 1년이 넘도록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존재감 없이 회사를 다니고 있다는 자격지심 때문이었는지, 두 손으로는 축하의 박수를 치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질투와 시기의 마음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죠.

편집자 P님은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그라고 언제 어디서든 스스럼없이 “진짜 짱이에요!”라고 외치던 무언가를, 기어이 책으로 만들어내는 편집자였습니다. 동경의 끝이 때론 질투에 닿듯이, 애정의 끝 역시 증오와 환멸에 이르기도 하죠. 적지 않은 편집자들이 한때 그토록 애정하던 저자들을 증오하게 되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누구보다 ‘좋아하는 마음’이 가득했던 편집자 P님 역시 피, 땀, 눈물(여기에 볼드 표시를 한 이유를 편집자 P님은 아마 아실 겁니다.ㅎㅎ)을 흘리며 애정과 증오를 담아 책을 기획하고 만들어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의 그런 순수한 마음과 실행력이 오래전부터 늘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편집자 P님에게 ‘애정을 책으로 만들어내는 법’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ㅍㅈㅈ: 간단히 소개를 부탁드려요.

편집자 P: 인터뷰에 앞서, 저와의 만남을 재밌고, 또 아름답게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에세이를 기획하는 편집자 H입니다. 반갑습니다. 제가 처음 '책'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건, 사춘기 시절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여행의 책』을 읽고 난 뒤였는데요, 책을 읽었다는 행위만으로 내 내면을 여행할 수 있다는 걸 몸소 체험하고 나서 책이 가진 위력을 새삼 알게 된 때였습니다. 이런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행복할 것 같다고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뒤 학술서를 만드는 출판사에 입사해서 편집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익힌 한글 편집이 여전히 유용하게 쓰이네요. 그 이후로는 문학 기획편집을 하고 싶어서 이직을 했고, 그러다 ㅍㅈㅈ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본격적인 도서 기획은 일을 시작한 지 5년째 되던 해부터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만 11년째 편집 일을 하고 있네요.

ㅍㅈㅈ: 직전 회사에 입사했을 때 ‘스카웃’을 당했다(?)고 들었습니다. 구체적인 과정이 궁금해요. 경력 편집자들에게 ‘스카웃’은 약간 로망 같은 일이잖아요!

편집자 P: 학술서 편집자로서의 2년 남짓한 시간과, 문학 전문 출판사에서 경험한 저명한 저자들과의 작업이 편집자로서의 그다음으로 나아가야 했던 저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두 곳에서 5년의 경력을 쌓은 다음 기획이 절실한 소규모 출판사로 이직하려던 면접 자리에서 '기획'을 맘껏 해보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얼마든지 해보라고 실패해도 좋다고 말씀해주셔서 기획회의를 매주 하기도 했습니다. 단순한 아이데이션이 아니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기획을 찾으려고 무던히 노력했습니다. 그때는 내가 어떤 편집자가 되고 싶은지 방향성을 찾지 못할 때라 시행착오도 많았습니다. 그러다 대체 불가한 에세이와 웹툰 작업을 하게 되었고, 그 책을 보고 SNS와 지인들을 통해 연락을 주신 분들이 몇 있었습니다. 그때 제 장점은 아마 '발빠른 것’과 '애정을 마구 표현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장점을 보고 모 출판사에서 먼저 입사 제안을 주셨습니다. 가벼운 미팅을 가진 다음 당장은 이직이 어렵다고 말씀드렸더니, 반년을 기다려줄 수 있다고 말씀해주셔서 좀 더 생각해보겠다고 한발 물러났습니다. 그런데도 또 연락을 주셔서, 고민 끝에 이직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연봉도 많이 업그레이드 되었고, 저 스스로도 먼저 이직 제안을 받았다는 사실에 뿌듯했던 기억이 납니다. 평소 다양한 인맥을 넓게 쌓아두려고 했던 점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