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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을 읽게 된 이유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당시 꽤 뜨거운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거실 소파에 앉아 킬킬거리며 책장을 넘긴 순간은 기억이 납니다. 당시 저는 주식 투자를 하지 않으면 바보가 되는 분위기 속에서 경솔하게 미국주식 몇 종목을 매수했다가 되판 직후였고, 폭등하는 집값을 바라보며 ‘이러다가는 평생 무주택자로 살지도 모른다’는 근거 없는 공포에 휩싸인 채 너무나 큰 무리를 하여 이사를 한 직후였습니다. 아마 제가 이 책을 읽으며 표정을 일그러뜨린 채 웃었던 이유는, 너무나 단순한 답이 코앞에 있는데도 고작 ‘불안’ 때문에 이상한 길을 택한 저 스스로가 너무 우스웠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달리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것도 아니었다. 나에게는 오로지 ‘살고 싶은 하루’가 있을 뿐이었다. 회사에서의 내 모습을 보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풍요가 우리 집에는 있었다. 나는 다음 달, 다음 해도 아닌, 당장 오늘 하루를 잘 보내는 방법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_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 44쪽

‘투자’라는 단어와는 한 서너 차원 떨어져 있음직한 알록달록한 표지의 이 책을 읽으며, 저는 저자가 택한 삶의 방식이 몹시 부럽고, 부럽고, 또 부러웠습니다. 글쓰기 노동을 제외하곤, 최선을 다해 밥을 차려 먹고 최선을 다해 오전의 햇살을 즐기는 것뿐인 저자의 책 속 삶이 저는 왜 그토록 부러웠을까요. 이 책을 읽으며 저는 지난 30여 년간 아등바등 쟁여 놓았던 저의 모든 것이 한순간 참 보잘것없다고 느껴졌습니다(물론 지금은 다행히 그런 생각은 사라졌지만요).

아마 제가 이례적으로 ‘20대 여성’이 쓴 ‘에세이’를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너무나 부러운 ‘갓생’을 사는 저자에게 어떤 불행과 불운, 빈틈과 실책을 찾아내려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게 잘 먹고, 잘 자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산다고? 그것도 서울에서?’ 본래 사람이란 질투의 대상이 생기면 처음엔 괜히 심술을 부리다가, 그 삿된 마음이 호기심과 탐구심으로 변하는 법이지요. 저는 저자가 궁금해졌고, 그 너머에서 이런 저자를 발견하고 책으로까지 만들어낸 편집자도 궁금해졌습니다.

사실 편집자 시옷님은 <월간 프즈즈>를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인터뷰이로 떠올렸던 편집자 동료였습니다. 여러 이유로 섭외의 말이 목구멍에만 맴돌다가 이번 제6호에 이르러서야 용기를 내어 인터뷰 제안을 드리게 되었네요. 오히려 그래서 더 다양한 이야기를 시옷님께 질문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편집자 시옷님에게 비장르 해외문학서의 독자가 조금씩 줄어드는 시대에, 대형 종합 출판사에서 원고 매수 2000매짜리 문학서를 연달아 편집하는 일과, 그리고 중노동에 가까운 교정교열 업무 속에서도 담담하게 가꿔나가는 나날을 물어보았습니다.


평일 12시 23분, 다산교 정류장에 모인 사람들

ㅍㅈㅈ: 시옷님 안녕하세요? 우선 간단히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편집자 시옷(이하 시옷): 안녕하세요. 출판사에 입사한 지 7년째, 서울 직장 생활은 한 번도 못 해봤고 오로지 파주 출판단지에서 쭉 지내고 있는 문학편집자 시옷입니다.

ㅍㅈㅈ: 어떤 계기로 출판계에 입문하셨는지 궁금해요. ‘편집자’라는 직업의 존재에 대해 인식하게 된 계기도 궁금하고요. 아마 시옷님도 처음에는 성실한 독자셨겠지요? 편집자라는 직업을 생각하게 한 책 같은 것이 있었을까요?

시옷: 20대 중반까지는 영상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이었어요. 대학에서 관련 복수전공을 했고, 교육원에 다니면서 3년 정도 스터디를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주52시간제가 없었어요. 천만 영화에 스태프로 참여했던 친구가 몇 달을 지방에 살면서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보수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 나는 못 하겠구나’ 계시처럼 깨달았어요(지금은 시스템이 많이 좋아졌다고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흥미 없는 낯선 분야에서 일할 자신은 없었고,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의 시간을 나 자신의 고양에 쓰면서도 생계와 워라밸이 보장되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편집자라는 좋은 직업을 알게 되었습니다. 영화와 드라마보다 먼저 좋아했던 게 소설이었고요.

ㅍㅈㅈ: 출판사에 입사하기 위해, 편집자가 되기 위해 따로 준비하셨던 것이 있을까요? 혹은 대학교에서 활동하셨다거나, 졸업 후 따로 시간을 투자해 준비하셨던 것들이요.